고졸 한국사 · 개항과 갑신정변·갑오개혁
한국사에서 「개항과 갑신정변·갑오개혁」 문항은 공식 하나를 정확히 쓰느냐로 점수가 갈립니다. 외울 식, 예제, 흔한 실수를 차례로 봅니다.
개항과 갑신정변·갑오개혁이란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문호를 연 조선은 개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과, 청일 전쟁 무렵 추진된 갑오개혁은 근대적 개혁의 대표적인 시도였습니다.
개항과 갑신정변·갑오개혁 공식
- 강화도 조약 (1876년): 최초의 근대적 조약, 치외 법권·해안 측량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
- 임오군란 (1882년): 구식 군인 차별에 대한 반발
- 갑신정변 (1884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3일 만에 실패
- 갑오개혁 (1894년): 군국기무처, 과거제 폐지, 신분제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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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일으킨 사건은? ① 임오군란 ② 갑신정변 ③ 갑오개혁 ④ 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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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갑신정변입니다.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를 세우려 했지만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개항과 갑신정변·갑오개혁 전후 연표
- 강화도 조약 (1876년)
- 임오군란 (1882년)
- 갑신정변 (1884년)
- 동학 농민 운동·갑오개혁 (1894년)
- 을미사변·을미개혁 (1895년)
개항과 갑신정변·갑오개혁 풀이 3단계
- 연도를 10년 단위로 떠올린다 (1870년대 개항, 1880년대 정변, 1890년대 개혁)
- 주도 세력(급진 개화파, 군국기무처)을 확인한다
- 결과(실패·개혁 내용)로 사건을 확정한다
한 단계 응용
문제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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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해안을 일본이 마음대로 측량할 수 있게 하고, 조선에서 죄를 지은 일본인을 일본 법으로 재판하는 치외 법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두 문제 가운데 하나라도 막혔다면, 첫 체험 수업에서 바로 이 부분부터 짚어 드립니다. 무료 체험으로 확인하기
시험에 나온 모습
분석한 1개 회차에서는 이 개념을 직접 묻는 문항이 없었습니다. 다만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운동 단원의 다른 문항을 풀 때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아 정리해 둘 가치가 있습니다.
감점 포인트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 혼동하는 실수가 가장 흔합니다. 갑신정변(1884)은 급진 개화파의 정변으로 실패했고, 갑오개혁(1894)은 정부 기구인 군국기무처가 추진한 제도 개혁입니다.
비슷한 개념과의 차이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온건 개화파는 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개혁하려 했고, 급진 개화파는 청의 간섭을 벗어나 일본의 메이지 유신처럼 빠르게 개혁하려 했습니다.
을미개혁의 단발령은 어떤 결과를 낳았나요?
을미사변(명성 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에 단발령에 대한 반발이 더해져 을미의병이 일어났습니다. 개혁과 의병 운동을 연결해 묻는 문항이 자주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