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한국사 · 흥선 대원군의 정책
검정고시 한국사 「흥선 대원군의 정책」, 무엇을 외우고 어떻게 적용하는지 예제와 함께 정리했습니다.
한 줄로 이해하기
고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잡고 안으로는 왕권 강화, 밖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폈습니다.
공식 정리
- 왕권 강화: 경복궁 중건(당백전 발행), 비변사 폐지, 서원 정리
- 민생 안정: 호포제 실시 (양반에게도 군포 부과)
- 병인양요 (1866년, 프랑스) → 신미양요 (1871년, 미국)
- 척화비 건립: 서양과 통상 수교를 거부하겠다는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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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신미양요 이후 전국에 척화비를 세운 인물은? ① 김옥균 ② 흥선 대원군 ③ 전봉준 ④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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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흥선 대원군입니다. 서양과 통상 수교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척화비로 알렸습니다.
순서로 보는 흐름
- 고종 즉위, 흥선 대원군 집권 (1863년)
- 경복궁 중건·서원 정리
- 병인양요 (1866년)
- 신미양요 (1871년)
- 척화비 건립 (1871년)
- 흥선 대원군 물러남, 강화도 조약 (1876년)
적용하는 방법
- 정책이 왕권 강화인지 통상 수교 거부인지 구분한다
- 양요의 순서(병인 → 신미)와 상대국을 확인한다
- 척화비와 신미양요 이후라는 시점을 연결한다
한 단계 응용
문제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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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를 마련하려고 당백전을 발행해 물가가 크게 오르고, 백성을 공사에 동원해 불만이 커졌습니다.
두 문제 가운데 하나라도 막혔다면, 첫 체험 수업에서 바로 이 부분부터 짚어 드립니다. 무료 체험으로 확인하기
시험에 나온 모습
분석한 1개 회차에서 이 개념을 직접 묻는 문항이 1번 나왔습니다.
- 8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2026년 제2회
흥선 대원군의 정책에서 틀리는 곳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상대국을 바꾸는 실수가 가장 많습니다. 병인양요는 프랑스, 신미양요는 미국입니다. 병인(1866)이 먼저, 신미(1871)가 나중입니다.
구분해 두면 좋은 것
흥선 대원군의 대내 정책과 대외 정책은 성격이 다릅니다. 대내 정책은 세도 정치의 폐단을 고친 개혁적인 면이 있었지만, 대외 정책은 근대 문물 수용을 늦추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서원을 정리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서원이 면세 특권을 누리며 백성을 수탈하고 붕당의 근거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47곳만 남기고 나머지를 없애 양반의 반발을 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