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졸 사회 ·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검정고시 사회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무엇을 외우고 어떻게 적용하는지 예제와 함께 정리했습니다.
한 줄로 이해하기
신라 말 혼란 속에서 견훤이 후백제를,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워 후삼국 시대가 열렸습니다. 궁예를 몰아낸 왕건이 918년 고려를 세우고 936년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공식
- 후백제: 견훤 (900년) / 후고구려: 궁예 (901년)
- 왕건: 918년 고려 건국, 935년 신라 항복, 936년 후백제를 무너뜨리고 후삼국 통일
- 태조 왕건의 정책: 호족과 혼인·성씨 하사로 통합, 북진 정책(서경 중시), 훈요 10조
- 광종: 노비안검법, 과거제 실시 → 왕권 강화
직접 풀어 보기
문제 918년 고려를 세운 인물은? ① 견훤 ② 궁예 ③ 왕건 ④ 광종
풀이 보기
③ 왕건입니다.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뒤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전후 연표
- 신라 말 호족 성장
- 견훤의 후백제 건국 (900년)
-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901년)
- 왕건의 고려 건국 (918년)
- 신라 항복 (935년)
- 후삼국 통일 (936년)
적용하는 방법
- 후삼국을 세운 인물과 나라를 짝짓는다
- 연도 순서(900 → 901 → 918 → 935 → 936)를 세운다
- 왕별 정책(태조·광종)을 구분한다
예제 하나 더
문제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과 혼인 관계를 맺은 까닭은?
풀이 보기
지방에서 큰 세력을 가진 호족들을 끌어안아 나라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두 문제 가운데 하나라도 막혔다면, 첫 체험 수업에서 바로 이 부분부터 짚어 드립니다. 무료 체험으로 확인하기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기출 기록
분석한 1개 회차에서 이 개념을 직접 묻는 문항이 1번 나왔습니다.
- 18 고려의 건국 2026년 제2회
감점 포인트
고려를 세운 사람을 궁예로 고르는 실수가 있습니다.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웠고, 그 신하였던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습니다.
헷갈리는 개념과 구분하기
태조와 광종의 정책은 방향이 다릅니다. 태조는 호족과 손잡는 통합 정책을, 광종은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로 호족 세력을 약하게 하는 왕권 강화 정책을 폈습니다.
고려라는 나라 이름에는 어떤 뜻이 있나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중요하게 여기고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려는 북진 정책을 폈습니다.